금세기 최고의 조직신학자 판넨베르크 『조직신학』 I, II, III 전권의 번역 출간 작업이 드디어 완결되었다. 20세기 유럽의 사상, 신학, 철학, 문화를 아우르고 녹여낸 그의 조직신학 전집은 신학을 전공한 학자들 사이에서도 난해하기로 악명이 높은 저작이지만, 탁월한 번역자의 치밀하고 명쾌한 번역으로 이제 한국의 신학생과 전공자들, 그리고 조직신학에 관심을 가진 일반 지성인들도 한 세기를 풍미한 대가의 사상에 한걸음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판넨베르크의 『조직신학』 전집은 세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I권에서 “하나님”(종교, 신학방법론, 신적 속성)을 숙고하고 II권에서 “그리스도”(창조, 인간, 화해)를 서술한 후, 이어지는 『조직신학』 III권의 주제는 “교회”(성령, 예정, 종말)로서 전집의 체계를 완성한다. 엄격한 학문적 성찰과 논술인 I/II권에 비해 III권은 교회론 등 전통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어 독자들에게 보다 더 친숙한 느낌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성령론보다 교회론의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판넨베르크 『조직신학』이 역사와 현실 속의 실제 교회들에 그 만큼 큰 관심을 두고 있음을 의미한다.
조직신학 이론을 역사적 현실과 철저히 결부시켜 전개하는 판넨베르크의 특징적인 신학 방법은 특별히 III권 제13장 “교회론”에서 뚜렷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판넨베르크가 보는 교회는 거룩한 실체도 아니고, 이상적 개념도 아니다. 그리스도교 교회는 분열되고 찢긴 역사적 현실이다. 교회는 세계 현실 속에서 실제로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개신교회로 나눠져 있고, 개신교회는 루터교, 감리교, 장로교, 성공회, 침례교 등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교단으로 갈라져 있다. 판넨베르크는 그리스도교 교회의 분열된 현실을 “성령을 거역한 죄”의 결과로 판단하며, 분열을 부추겼던 과거와 현재 교회 지도자들의 탐욕과 우매함에 대해 경고한다. 그다음에 분열된 세계 교회들을 현실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영적 교제”(communio)를 진지하게 고민한다. 이에 따라 어떻게 교회의 성례전을 통해 개인적 신앙인과 공동체가 연합할 수 있는지, 다음 단계로 개신교 교단들 사이에서, 나아가 개신교와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가 대륙을 건너 어떻게 전 지구적인 하나의 교회를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판넨베르크의 심원한 통찰이 『조직신학』 III권 제13장에서 광범위하게 전개된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교 교회가 당면한 통일의 과제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앞선 제12장 성령론의 이해가 꼭 필요하다. 성령의 능력 안에서 하나님 나라와 세상의 정치 사회적 영역이 균형을 이룰 수 있게 된다면, 교회일치는 한 걸음 전진할 수 있다. 판넨베르크는 창조의 영으로서의 성령이 “율법과 복음”의 깊은 관계를 통해 어떻게 교회와 정치 질서 사이의 관계를 실현하는지 성찰한다. 역사 속에서 실현되는 교회일치의 길은 제14장 “예정론”에서 영원한 예정의 빛 속에 선다. 교회일치의 길은 아직 미완성이지만, 종말론적 미래를 바라보고 종말을 향해 나아간다는 점에서 영원의 현재적 실현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교회를 향한 세계사적인 길의 마지막 목표는 제15장 종말론에서 밝혀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실현되었던 역사와 인류의 종말이 시간의 끝에서 완성과 충만한 의미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판넨베르크 『조직신학』 III권은 12장 성령론, 13장 성령론, 14장 예정론, 15장 종말론의 순서로 전집 내용을 마무리한다.
한국어로 번역된 그의 조직신학도 결코 가볍게 읽어서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이해하는 데 역사철학, 관념주의, 교의학, 성서학, 자연과학 등 제 분야에 관한 기초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정밀하고 탄탄한 문장을 읽고 되새기는 가운데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 조직신학자가 들려주는 심오한 이야기를 깨우치는 즐거움과 맞바꿀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