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앞으로 닥칠 좋지 않은 것을 보여주셨다면, 나에게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미 알고 계신다는 사실로 충분해. 그래서 하나님은 때때로 그런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거야. 그것도 역시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려고 말이야.”- 93p
‘이토록 낭비하는 것 같고 불필요한 모든 것, 즉 전쟁, 슈브닝겐 감옥, 이 감방 등이 모두 우연한 일일까? 지금의 나의 생활이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삶을 본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기서 나는 정말 열심히 성경을 읽고 있는데,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고난을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말할 수 없이 처절한 고통과 실패에 비할 수 있을까?’
만일 성경에 나타난 대로 하나님의 역사가 진행된다면 패배는 단지 시작일 따름이다. 나는 황량한 작은 감방을 둘러보면서 이런 곳에 어떤 승리가 숨겨져 있을까를 생각했다. - 213p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까? 어떤 하나님이기에 당신의 아버지를 슈브닝겐에서 죽게 놓아두었습니까?”
나도 아버지가 왜 이런 곳에서 죽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외에도 많은 것을 알지 못했다. 갑자기 어려운 질문에 대한 아버지의 답변이 생각났다.
‘어떤 지식은 너무 무거워서…… 네가 감당할 수 없단다. ……네가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아버지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 231p
신체검사라는 치욕적인 순간이 다시 왔다. 우리는 팔짱조차 끼지 못하게 되어 있었고, 꼿꼿이 서서 빙긋이 웃음을 띤 채 늘어선 간수들 앞을 지나가야 했다. 그들이 뼈만 앙상한 다리와 굶주림으로 착 달라붙은 뱃가죽을 보면서 어떤 쾌감을 느끼는지 나로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또한 나는 옷을 완전히 벗기는 이유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복도에서 기다리며 떨고 있던 어느 날 아침, 성경에 기록된 한 장면이 내게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분은 발가벗겨진 채 십자가에 달리셨다. 나는 알지 못했다. 생각지도 못했다. 십자가 그림이나 조각에는 최소한의 헝겊 조각 하나쯤 표현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술가의 존경과 경외심이었다.
그 금요일 아침, 우리를 둘러싼 그들의 얼굴에는 인간 존중의 모습이 전혀 없었다. 나는 앞에 서 있는 벳시에게 몸을 기울였다. 파랗게 소름이 끼친 그녀의 피부 아래로 앙상한 뼈와 가는 어깨가 뾰족하게 솟아 있었다.
“벳시, 사람들은 예수님의 옷도 벗겼어.”
내 앞에서 조그맣게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
“오 코리, 그런데도 나는 주님께 감사한 적이 없었구나…….” - 27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