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보통의 지역 교회에서 보통의 교인들에게 정기적으로 설교하는 보통의 목회자들을 위하여 쓰였다. 혹 아직까지 설교자로서 명성을 꿈꾸고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상 그런 운명에서 뒤로 밀려난 우리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우리가 소망하는 것보다 더 작은 규모의 회중을 상대로 설교한다. 게다가 대부분은 예외 없이 우리가 목회 사역에 처음 발을 디디면서 소망한 것보다 훨씬 더 고달픈 상황에서 설교한다. 때로는 교인들의 무관심 또는 냉대에 지치고, 때로는 전혀 수그러들 줄 모르는 교회 리더십들의 지속적인 압력과 난관에 시달리다가 주저앉기도 한다. 우리가 일주일 내내 설교를 준비하고 주일 이른 아침부터 설교를 전할 때, 우리 등 뒤에서 가끔은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이게 정말 일주일 내내 수고할 가치가 있는 일일까? (14)
나는 몇 년 전, 향년 108세에 세상을 떠난 알버트 마샬(Allbert Marshall)의 부고를 읽었다. 그는 1차 세계대전 때 각자의 말을 타고 서부전선으로 돌진한 영국군 기병대의 마지막 생존자였다. 당시에 헤이그 장군을 비롯한 영국군의 지휘부는 기병대가 전투에서 승리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쏜살같이 내달려 보병대의 전선을 무너뜨리는, 창칼로 무장한 기병대의 돌격이라면 말이다. 크세노폰(Xenophon)이 이끌던 고대의 그리스 용병대 이후, 여러 세기에 걸쳐 계속된 그 명성에 어울리게, 기병대는 파죽지세로 돌진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고성능의 폭약 포탄과 독가스 화학무기의 사용으로, 기병대는 시대에 뒤쳐친 가망 없는 전략임이 드러나고 말았다. 그들은 한낱 지나간 고대 전쟁의 유물에 불과했다. 많은 사람들이 설교를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 지나간 시대의 방식을 유지해 보려는 향수에 젖은 그리스도인들의 영웅적인 시도라는 것이다. (23)
그런 모세의 설교는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의 설교는 우리를 주목하게 하고 우리의 심령을 향해 명령한다. 내가 모세의 설교로부터 끌어내고자 하는 이번 두 번째 장의 주제는 ‘교회를 변화시키는 설교,’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변화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모세의 설교는 그의 간절함이 묻어날 뿐만 아니라 백성들에게 생명을 선택하도록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을 지녔다. 문제는 우리 설교자들이 그와는 정반대되는 설교를 듣거나 전하는 일에 너무 익숙해 있다는 것이다. (77-78)
무엇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두렵고 떨림을 언급한 모세의 인식이 우리의 제멋대로인 세상 속에도 깊이 각인되어야 한다. 모세의 설교는 세상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그가 설교하는 하나님이야말로 고립된 지역의 어느 왜소한 신이 아니라 온 세상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과의 이러한 연결성은 매우 중요하다. 한편, 멜빈 팅커(Melvin Tinker)는 특별히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인식이 결여된” 강해설교에 대하여 경고한 바 있다. 그런 설교는 “대개 건전하고 복음주의적인 설교일 수는 있으나 효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선포된 말씀과 세상 사이에 아무런 연결성이 없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86)
요약하면, 신명기는 하나의 총회로서 교회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규범을 예시한다. 이 신명기에 따르면,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함께 부름을 받고, (설교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듣도록 함께 부름을 받으며, 하나님이 택하신 곳으로 함께 부름을 받은, 하나님의 은혜 아래 그리고 충만한 기쁨을 위하여 일부가 아닌 모두가 함께 부름을 받은 총회인 것이다. 이것이 그 총회의 날에 펼쳐지는 장면이다. 신명기는 이러한 네 가지의 규범적인 모습을 제시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설교가 하나님의 백성이 어느 한 곳에 총회로 함께 모이는 것과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명시하고 있다. (149)
설교자로서 여러분과 나는 우리에게 맡겨진 목회의 사역이 근본적으로 말씀의 사역이라는 사실에 위로를 얻기를 바란다. 이 사역은 하나님께서 깨어진 이 세상을 다시 모으고 회복시키는 일에 동원하실 그의 백성을 빚어가도록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다. 깨어진 세상을 다시 모아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전략은 곳곳에 하나님 백성의 총회인 그분의 회중을 일으켜 은혜의 말씀으로 그들을 빚어가시는 것이다. (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