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대해서는 비평적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가 성경 본문을 읽을 때 받는 인상(impression)은 우리의 문화적·종교적 선입견(preconception)에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성경 본문에 대해 비평적이어야 한다기보다는 우리가 가진 선입견을 벗겨 내기 위해 자신의 생각에 대해 비평적이어야 한다. 우리가 성경에 대해 갖는 지식과 전 이해 자체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그 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p. 11, 들어가는 글
이 책은 독자 대신 성경을 해석해서 결론을 제공해 주기보다는 독자 스스로가 신약의 세계에 가까이 다가가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내가 다녀온 지역을 설명해 주는 선생님보다, 함께 마주하고 있는 세계를 안내해 주는 관광 가이드 역할에 가깝다.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성경을 읽고, 초기 교회의 삶을 생생하게 상상해 볼 수 있다면, 성경에 진지한 독자들, 특히 성경교사와 설교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p. 14, 들어가는 글
우리말 성경의 “두란노 서원”을 두란노 공장 혹은 두란노 공방으로 바꿔 번역할 가능성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두란노라는 이름의 부정적 어감을 볼 때 누군가의 본명이기보다는 공장 주인의 별명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도 해 볼 수 있다. 공장이라는 번역으로 마음을 기울게 하는 다른 이유도 있다. “손수건”이나 “앞치마”가 치유의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소품들이 왜 등장하는지 질문해 보아야 한다.
-p. 20, 서론
교회는 영적 공동체인 동시에 사회적 실체다. 영적 실체로서의 기독교회는 만물을 새롭게 하는 부활의 능력을 따라 새로운 삶을 향해 부름받은 공동체다. 하지만 사회적 실체로서의 교회는 환경의 제약 안에 놓여 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선포한 메시지는 새로운 것이었지만, 그들 모임의 실제 형태는 당시 다른 사회적 집단들과 연속선상에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p. 50, 2장 초대교회와 닮은꼴 찾기 1
고린도 교회는 큰 집을 가진 부자들이 있었고, 그들이 자신의 물질로 공동체를 기꺼이 섬기려는 의지를 가진 교회, 좋은 출발선에서 시작한 교회였다. 그런데 그 교회가 다른 가난한 교회들보다 훨씬 더 문제가 많은, 바울로부터 강한 질책을 받은 교회였다는 점은 우리에게 강한 도전을 준다.
-p. 79, 3장 초대교회와 닮은꼴 찾기 2
교회와 회당 사이 도보 1분이라는 거리 감각은 유대교 내의 갱신 운동으로 출발했던 초기 예수 운동과 유대교의 관계를 상상하게 하는 요긴한 물리적 단서다. 2세기 초반에 기독교는 유대교의 모태로부터 떨어져 나와 독립적인 자기 정체성을 확립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 후 수백 년 동안 유대교는 물리적, 사상적, 문화적으로 기독교의 지근거리에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pp. 104-105, 5장 초대교회와 닮은꼴 찾기 4
사도행전은 한편으로는 로마의 체제를 존중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태도를 대변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 체제 위에 계신 하나님, 당신의 뜻에 맞지 않는 체제라면 언제든지 흔들 수 있는 하나님을 함께 증언하고 있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진저!
-p. 147, 7장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 안에서 종이나 자유자가 따로 없다는 복음의 능력이 2천 년 시대를 넘어 한국 초기 교회까지 힘을 발휘했다는 사실에 경탄할 뿐이다. 여성과 남성의 차별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가 복음의 메시지와 예수의 정신을 참으로 본받을 때, 교회는 좀더 조화롭고 평등한 삶을 향해 여자와 남자가 자신의 잠재력을 유감 없이 발휘하는 사회로 가는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p. 164, 8장 1세기 회당과 교회에서 여성의 위치
초대교회의 예배가 갖던 독특한 매력과 힘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의 예배가 상당한 불편을 수반했다는 점이다. 이 불편함은 예배가 지향하던 가치가 당대 문화와 상당한 긴장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기독교 복음의 본질에 속한 불편함이었다.
-p. 219, 11장 그들은 어떻게 예배했을까?
우리는 한쪽으로는 뱅크스의 대담한 상상력의 도움을 받고, 다른 한쪽으로는 역사적 자료를 다루는 엄밀성에 대한 훈련을 받으면서 1세기 교회의 일상과 우리의 일상을 연결시키는 일에 나서야 한다.
-p. 254, 부록
과거의 어느 한 시점을 살다 가신 예수님과 지금도 예배 공동체에서 경배받고 계신 그리스도가 우리 신앙의 두 초점이며, 사랑의 대상이라는 점과 유비를 이룰 수 있다고 조심스레 제안한다. 객관적 해석과 함께 사랑의 해석학이 있어야 함을 깨우치는 것이다. ‘겸손과 사랑’이야말로 짧지 않은 기간 성서학자로 살면서 늘 마음에 새기고자 하는 가치다.
-pp. 263-264, 나가는 글
이 책에서 논한 다양한 접근이 자신의 전통을 상대화하고 신앙의 다른 표현에 대하여 마음을 열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고백에 대한 진일보한 이해가 하나님의 말씀과 주님의 몸된 교회에 대한 사랑을 더해 준다면 이 책에 기울인 작은 수고에 주어지는 큰 보람이 될 것이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p. 264, 나가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