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의 압박 속에서 자신 안으로 움츠러드는 오늘날의 기독교 사상과는 대조적으로, 예수님이 남긴 비유들은 돌파적이고 혁명적이었다. 예수님의 말씀은 1세기 유대교 세상 안으로 뚫고 들어가 낡은 사고를 깨뜨리고 새롭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을 열어주었을 뿐 아니라, 다른 방식의 생각과 기도 와 삶을 착안하는 참신한 식견을 가질 수 있게 하는 해석학적인 공간을 창조했다. 같은 방식으로 성경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살아서 역동적으로 힘을 발휘하고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약속한다(사 40:8 55:11 히 4:12). 그렇기에 우리는 성경을 새롭게 읽고 가르치는 작업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신선한 관점들을 받고 그것으로 현대 문화와 그 안의 모든 것들을 다루고 비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가질 수 있다. 무기력하게 세상 문화의 틀 속에 그 관점들을 밀어 넣음으로써 중성화시키지는 않으리라고 희망할 수 있는 것이다.-프롤로그 중에서
이 모든 말이 “성경”의 진술임을 고려할 때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성경은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으며 최종적인 참된 권위는 하나님에게 속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위임되었음을, 권위를 가지고?정말 성경이 권위를 가진다면!?주장한다는 점이다...(중략) “성경의 권위”라는 문구를 여행 가방에서 꺼내보자. 그렇게 하면 우리는 이 문구가 하나님 자신의 권위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님이자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고 임마누엘로서 가졌던 권위가 성경에 위임되어 중재됨을 나타내는 말이며, 이렇게 이해할 때만 비로소 기독교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 “성경의 권위”는 “성경을 통해 발휘되는 하나님의 권위”라는 뜻으로 이해할 때만 진정한 기독교적 의미를 살리는 것이다. -제1장 중에서
성경이 성취되어야 한다고 예수님이 말했을 때, 그분은 자신의 행위가 현실과 동떨어진, 옛날 예언들과 우연적으로 일치하는 산발적이고 무작위적인 해프닝에 그칠 거라고 믿지 않았다. 예수님은 자신 안에서 성경의 이야기 전체의 줄거리가 마침내 결실을 맺고 있음을 믿었으며, 과거에는 암시와 그림자에 머물렀던 모든 것이 이제는 분명한 말로 표현되고 충만한 빛 가운데 드러나고 있음을 의식했다. 내가 보기에는 바로 이것이,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성취하기 위해 왔다”(마 5:17-18)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함축하는 심오한 의미이다.-제3장 중에서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경험” 자체가 바로 성경의 권위에 순복해야 하는 대상이며, 성경의 권위가 발휘되는 정황이다. 처음부터 “권위”가 필요했던 것은, “경험”이란 유동적이고 애매모호하기 때문에, 또 독실한 그리스도인을 포함하여 모든 인간들이 전통과 이성을 사용하는 데 있어 심각한 다층적인 자기 속임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경험”을 권위로 여기는 것은, “권위”라는 단어 자체가 해체됨을 시인하는 일일 뿐 아니라, 이 단어가 무미건조한 옛 의미로서의 “상소 법원”으로도, 또 동시에 성경적인 의미에서의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는 그분의 능력이 발휘되는 통로”로도 기능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제6장 중에서
성경이 놓인 컨텍스트를 이해하는 동시에 성경의 독자인 우리의 컨텍스트를 면밀히 이해하는 것, 이렇게 컨텍스트를 온전히 이해하며 성경을 읽는다는 프로젝트는 절대 마무리될 수 없는 작업이다. 절대로 우리는 성경 텍스트가 담고 있는 상상할 수 없는 풍성함을 우리의 인간적 방식을 통해 다 측량할 수 없을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성경 언어 사전의 편찬과 고고학 및 새로운 통찰력을 선사하는 다양한 학문의 연구가 이루어낸 진보에 항상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몇몇 난해한 질문들에 대해 어떻게 해도 결코 해답에 도달할 수 없으리라는 의미는 아니다. 예를 들어 미래에 올 학문의 연마는 위에서 언급한 두 교리(예수님의 신성과 이신칭의)에 대해 의문을 품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이해에 도달하도록 도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각자도, 개인적인 차원에서나 세계적인 차원에서 서로 너무도 다르며, 심지어 나 자신만 보더라도 몇 년 전 과거의 모습에 비해 너무도 달라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자신에 대한 이해들을 재평가하고, 이 생각들이 발전하는 것에 대해 또 새로운 통찰이 우리의 생각 속에 자리를 잡는 것에 대해 기뻐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제8장 중에서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