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은 교회에서 가장 사랑받는 성경이다. 아름다운 선율과 목가적 이미지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드높이는 시편은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또한 시편은 평행법, 은유법, 직유법, 과장법, 함축, 생략 등 히브리 시에서 사용되는 수많은 장치를 동원해 하나님의 구원과 인간 실존의 심연 깊숙한 곳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그뿐 아니라 다른 어떤 성경 저자들보다 개인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시편 저자들 때문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겪는 많은 사람이 시편의 간구와 고백에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게 된다. 그 결과 여러 시편 본문이 오늘까지 찬양과 기도의 내용으로 사용되며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편 전체의 신학을 충분히 숙지하고 시편 본문에 접근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단지 이해하기 쉽고 공감하기 쉬운 일부 시편이 높은 빈도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우리의 신학 교육 현장에서 시편을 충분히 연구하고 음미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목회 현장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아 시편의 깊은 맛을 우려내어 목회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목회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결과 시편에 대한 편향되고 협소한 선호, 빈곤한 신학적 이해가 날이 갈수록 심화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사이 성서신학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시편에 관한 이해는 눈에 띄게 확장되고 정교해졌다. 특히 개별 시편이 말하는 의미에만 집중하던 학계는, 마침내 구조적이고 신학적인 측면에서 여러 시편을 연결해서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시편 전체가 잘 짜인 구조 속에서 특별한 주제들을 강조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즉 시편을 이루는 150개의 시가 단편적이고 우연적인 방식으로 모인 것이 아니라, 신학적인 의도 아래 하나의 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게끔 유기적으로 배치되었다고 보게 된 것이다. 오랫동안 시가서에 관심을 두고 연구해온 『새로운 시편 연구』의 저자는 이런 세계적인 시편학계의 흐름에서 벗어난 우리의 목회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저술했다.
시편이 “이야기”(story)이자 “신학책”(theological book)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는 이 책은, 먼저 지금까지 있었던 시편 연구 방법을 개괄하고, 이 책의 주된 접근법이기도 한 정경비평(canonical criticism)과 이를 대표하는 학자들을 자세히 소개한다. 그 후 다섯 권으로 이루어진 시편의 본문을 권별로 하나씩 다루며 각 권의 구성적·장르적 특징을 살펴보고, 해당 시편들이 어떻게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구성을 통해 어떤 메시지가 만들어지는지를 면밀하게 추적한다. 이 과정에서 특히 시편 각 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작과 중심, 끝부분에 배치된 시편들에 집중하는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독자들의 수월한 이해를 돕는다.
개별 시편 묵상에 오랫동안 익숙해진 한국의 성도들에게 이 책의 주장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이 말하는 대로 시편은 150개의 시가 씨줄과 날줄이 되어 치밀하게 조직되고 배열된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거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왕”(다윗 가의 왕적 인물)을 의지하지 말고 신실하신 “하나님-왕”을 신뢰하라는 신학적 메시지를 선명하고 강렬하게 전달한다. 우리는 이런 주제 의식을 가지고 시편을 대할 때 시편의 진가를 발견하며 더욱 풍성하고 다채로운 신학적?목회적 양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평면적으로 이해해왔던 시편 말씀을 입체적으로 보고 들을 눈과 귀를 선사해줄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이 시편에 촘촘히 박혀 있는 보화들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