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인정은 우리에게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완전한 인정을 하나님이 주셨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정을 누리기 위해서는 한 가지가 필요하다. 내가 인정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정받아야 한다는 갈망에서 벗어나 나를 인정하신 하나님 아래로 들어갈 때, 우리는 완전한 인정을 누린다.
- 〈인정받고 싶었어〉
사람들은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몫이다. 우리는 감히 하나님의 일을 다 알 수 없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는 알 수 있다. 그 어떤 변화도 없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일터의 현장에서도 하나님은 분명히 나와 함께하고 계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장소에서, 어떤 사람들과, 얼마나 가치 있고, 의미 있어 보이는 일을 하는가보다 일터의 현장 속에서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신뢰하는 것이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든지 기억하자.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을 하는가’보다 더 중요한 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분이 ‘지금 이 순간에도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이다.
- 〈오늘도 난 아무 의미 없는 일을 한다〉
믿음은 내가 좋은 직업을 구하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믿음은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 안에서 증명되었다는 이야기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지를 증명해 주셨다. 우리의 존재는 그 사랑 안에서 확고하게 세워졌다. 십자가의 사랑에서 나의 존재를 발견한 사람에게 일은 다양한 삶의 한 방식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는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가?’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안에서 나의 존재가 완전히 증명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 〈내 동생은 일용직 노동자입니다〉
인생을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이 있을 때 우리는 이기적인 세상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주실 때 세상에서 바보 같은 일인 배려, 용서, 희생, 사랑은 가장 값진 일이 된다. 이기적인 세상에서 배려와 양보, 희생과 사랑의 삶을 사는 건 결코 미련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심판이 있을 때 바보 같은 삶은 가장 가치 있는 삶으로 바뀐다.
- 〈바보같이 살지 마〉
우리는 사랑의 역설을 안다. 사랑은 항상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진다. 부모 이기는 자식은 있어도,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 더 사랑하기에 져준다. 예수님은 져주는 것을 넘어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십자가는 모든 것을 뛰어넘는 사랑이다. 이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내 삶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한 사람은 잔뜩 들고 있던 인생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참된 쉼을 발견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짐을 내려놓는 방법이 아니다. 내 짐을 대신 지어 주실 예수님이다.
-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은 나의 실패나 좌절, 초라함 따위에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다. 항상 그 자리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모든 상황과 환경을 뛰어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이런 하나님의 영광을 안다면 우리는 그 어떤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수 있다.
- 〈하나님 영광은 그렇게 초라하지 않아〉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