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을 갖고 성경을 읽을 수도 있지만, 성경을 읽다가 관점이 열리는 것이 건강하다. 왜냐면 성경 자체가 우리에게 주고 싶은 관점(세계관, 인간관, 신앙관, 인생관, 물질관)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하는 성경에 대한 관점이 열리고, 성경이 말하는 성경 이야기가 보이는 성경읽기를 사모하라. 그러려면 적극적인 수동성을 갖고 성경을 대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가장 쉽고 바른 성경읽기는 성경의 독자(讀者)가 성경의 청자(聽者)가 되는 것이다. 기록된 로고스(logos)의 말씀이 들리는 레마(rhema)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내가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주께서 내게 성경을 읽어주시는 것이다. 내가 성경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나를 조명해 주시고(엡1:17), 내가 성경을 독파(讀破)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나라는 존재를 독파(讀破)하시는(히4:12) 것이다. 이것이 놀라운 성경읽기 체험이다. 왜냐면 성경은 시각(video)과 청각(audio)을 동시에 터치하시는 입체적 진리요, 들리는 말씀(Word)과 보이는 이상(vision)으로 임하는(삼상3:1) 전면적 계시이기 때문이다.
이런 성경읽기 체험을 하려면 먼저 삶의 방식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성경을 읽되 신의 언어가 나의 언어가 되려면 출애굽적 결단이 필요하고 언어적 식이요법이 필요하다. 세상의 언어를 절식하고 신의 언어로 날마다 양식을 삼으라. 신의 언어는 지면(紙面)에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내면(內面)에 채우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린 영혼의 양식이 되고, 눈먼 영혼의 빛이 되게 하라. 매일의 먹이가 바뀌어야만 주인이 바뀌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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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서(토라)는 모세오경으로, 구약성경을 비롯한 성경 전체의 근간이다. 여기에는 인류의 시작과 이스라엘의 족장들, 출애굽부터 가나안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이 담겨 있으며, 도덕(법십계명)과 의식법(제사법) 및 시민법이 나와 있다.
율법서는 성경 66권의 시작이자 구약의 시작이며,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시작이다. 율법서는 하나님이 누구이신가에 대해 분명하면서도 반복적으로 말씀하고 있다.
모세오경은 모세의 저작인가, 아니면 후대에 편집된 작품인가? 오경은 내용과 주제와 목적과 문체에 있어서 일관성과 연속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창세기에 이미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창15:13-16). 모세가 창조의 역사부터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히브리인의 강력한 구전 전통과 더불어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로 추정된다(출33:11). 이는 마치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공생애를 직접 목격하지 못했지만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서 직접 복음에 대한 계시 (갈1:12)를 받아 증거했던 것과 같다고 하겠다. 그 외에도 모세가 기록했다고 성경 자체가 증언하고 있다(출17:14, 24:4; 신31:9, 24). 예수님도 모세가 저자임을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마8:4, 19:8, 23:2; 막7:10, 12:26; 눅24:27, 44; 요7:19). 또한 구약의 모세는 신약의 바울처럼 지적으로 성경의 주요 내용을 기록할만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행7:22).
모세의 출애굽 연대를 BC 15세기로 볼 경우(4일ⓑ 참고), 투트모세1세 때 하셉수트 공주에게 입양되어(4일? 참고) 애굽의 언어와 학문을 배운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40세에 애굽인을 죽이고 도망쳐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목자로 살았다. 그러나 그 기간이 잃어버린 40년이 아니었음은 그가 앞으로 광야의 지도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80세에 모세는 애굽으로 돌아가 히브리 백성을 구출해 냈고 40년간 인도하여 모압 평지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가나안 진입 미션은 후임자 여호수아에게 맡기고 눈을 감았다. 그는 구약 최대의 구원 사건인 애굽 탈출(exodus)을 이끈 인물로 장차 오실 구원자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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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막의 영적 의미는 무엇인가(25-27장)?
1. 성막(holy tent)은 하나님의 거처요 백성과 교제하는 회막(meeting tent)이다(요일1:3).
2. 10m 되는 뜰문은 누구든 믿는 자에게 유일한 구원의 문이 되시는 예수님이다(요10:7).
3. 희고 깨끗한 세마포 장막은 세상으로부터 성별케 하시는 순결한 예수님이다(계19:14).
4. 제물을 태우는 번제단은 나의 죄를 씻으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다(벧전2:24).
5. 물두멍에서 물로 씻음은 날마다 십자가 앞에 나의 죄를 자백하고 씻어냄이다(요일1:7, 9).
6. 덮개는 교회를 세상의 빛으로부터 차단하고 보혈로 덮으시는 예수님이다(엡1:22).
7. 떡상의 진설병은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요 성육신하신 예수님이다(요6:48).
8. 순금 등잔대는 우리의 영원한 빛이 되시는 예수님이요, 성령 충만한 삶을 뜻한다(요8:12).
9. 분향단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끊임없이 올라가는 성도의 기도다(계5:8).
10. 휘장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시는 예수님이다(히10:20).
11. 속죄소(贖罪所, atonement cover)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시은좌(施恩座, mercy seat)다(히4:16; 계7:10).
12. 증거궤는 말씀으로 임재하셔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하나님이다(요1:14).
▣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장막 안에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 그는 성소에 들어가 말씀(떡상)과 성령(등잔대)과 기도(분향단)로 충만한 예배자가 된다.
▣ 길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의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과 교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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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의 망명이 왜 문제였는가(27:1)?
1. 인간적인 두려움으로 내린 선택이었다(27:1).
2. 육신은 편했지만 거짓말을 일삼았다(27:10).
3. 이방인 왕의 호위 무사로 전락했다(28:2).
4. 조국 이스라엘과 칼을 겨눌 뻔했다(29:8).
5. 망명기간 중 하나님께 엎드리지 않았다(30:6).
▣ 힘들고 두려울지라도 부르심의 자리를 떠나지 말고 지켜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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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가복음의 아람어 번역
1. 보아너게 “우레의 아들들”(3:17).
2.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5:41).
3. 에바다 “열리라”(7:34).
4. 아바 “아빠”(14:36, 개역한글).
5. 골고다 “해골의 곳”(15:22).
▣ 로마인 독자들을 위해 친절하게 번역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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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주/예수님은 누구신가? 구원자 예수님
“나를 따르라”(마9:9)
박해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물고기(헬, 익투스)를 암호로 사용했다. 익투스는 “예수(Jesus) 그리스도(Christ)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 구원자(Savior)”라는 의미다. 그렇다.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줄 수 있는 다른 이름은 없다(행4:12)! 예수님을 오해하지 말라.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것은 나와 같은 죄인이라서가 아니라, 나 같은 죄인을 건지시기 위함이었다.
마태는 너무나 감격했다! 평생 그날을 잊을 수 없었다. 신약의 저자들 누구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는데, 정작 본인은 열두 제자 목록에 “세리 마태”(마10:3)라고 명시했다. 왜인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나는 죄인의 괴수였노라(딤전1:15) 고백했던 바울과 같은 심정이 아니었겠는가. 실패한 삶의 어두운 골방에 갇혀 살던 수가성 여인이 동네 사람들에게 달려가 외치던(요4:3-30) 심정이 아니었겠는가!
복음서 곳곳에서 예수님은 목숨 걸고 영혼들을 건지셨다. 거라사 광인도,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도, 예수님이 목숨을 걸지 않으신 영혼은 없었다. 언제든 그 한 영혼을 살리는 값으로 자기 생명을 내놓으실 참이었다. 그렇게 예수님은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구조 현장에 나타나신다. 지금도 주님이 재난 현장에 갇
힌 당신에게 찾아와 동일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자 이제 이곳에서 나가자!” 오늘 그 주님의 손을 붙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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