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따라 다닌 삼 년 동안 베드로는 지속적으로 실패했습니다. 예수님이 기대하신 수준의 제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베드로는 예수님과 동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올라가신 후에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들어가는 글-
베드로의 삶에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찾아오신 것은 당시 시대 상황에서 대단한 파격이었다. 선생이 제자 후보자를 직접 찾아가신 것도 그렇고, 어부를 제자로 부르신 것도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시작되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이스라엘 회복을 위해 자신을 부르신 것으로 이해했고 투신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라면 민족의 염원인 로마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을 쟁취할 수 있다고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도와 기필코 독립을 이루겠다고 결단한 것이다. 예수님 같은 능력의 소유자라면 충분히 이스라엘의 독립을 쟁취할 수 있겠다는 기대와 열망을 품었던 것 같다.
-가자! 이스라엘의 독립으로-
베드로는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예수님이 이스라엘 독립을 이루실 메시아라는 확신이 더욱 굳어졌고 엄청 흥분되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가공할 신적 능력도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움과 감격이었지만, 가는 곳마다 무리들이 보여준 뜨거운 호응은 이스라엘 독립의 꿈을 더 확고하게 키워주었을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기 참 잘했다는 생각에 가슴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다.
-해방의 꿈을 키우다-
예수님이 바다에 대해 무지하셔서 날이 저문 다음에 항해하자고 하신 것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베드로와 제자들을 그 상황에 데리고 가셨다. 베드로에게 가장 익숙한 장소, 자신이 전문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갈릴리 바다에서 폭풍이라는 한계 상황을 만나게 하셨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믿음을 보기 원하셨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사람으로 변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원하셨다. 그러나 베드로는 중간 점검에 낙제했다.
-베드로가 낙제하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사십 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 승천하시기 직전에 지상에서 마지막 분부를 내리셨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4-5). 그 순간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던졌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행1:6). 제자들은 예수님의 승천하시기 직전의 상황에서조차 예수님이 이스라엘 독립을 이루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해 주실 것을 기대했다.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아마 그 닭은 매일 같은 시간에 울었는지 모른다. 제사장의 뜰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아니 저놈의 닭은 오늘도 또 우네, 안 우는 날이 없어’ 이런 정도로 반응을 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닭 우는 소리는 아무 의미도 없다. 늘 우는 소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날 그 시점에 그 닭의 울음소리는 베드로에게 자신의 과오를 깨우쳐주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만드는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닭 우는 소리와 같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한 현상도 예수님의 말씀이 확인되는 증거가 된다.
-모든 것이 끝났다-
베드로의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기적을 보여주시고 가르침을 베풀어주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이 세상에 보내실 성령님의 역사를 위해 준비시켜 주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고 하셨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떠나 가셔야 성령님이 오시기 때문이다. 자기의 목표와 열정에 빠져 있던 사람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로, 빈 마음의 소유자로, 성령님이 역사하실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모든 것이 끝난 뒤 베드로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가 주어졌다.
-모든 것이 끝난 뒤-
베드로는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신 자초지종을 말하고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탈옥 소식을 전하라 부탁한 후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예수님과 함께 하는 알 수 없는 행선지를 향해 떠나갔다. 이것이 성경에 기록된 베드로의 마지막 뒷모습이다.
-예수님께 목숨을 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