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광야’ 중에서 〉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고독을 끌어안아야 한다. 고독을 통해서 들려오는 내면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사람들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는 시간, 하나님의 음성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사람들과의 잡담 끝에서 밀려오는 것은 피곤함과 권태다. 채워짐보다 쏟아 냄으로 공허를 불러온다. 고독은 결핍이 아닌 풍요를 경험하는 시간이다.
고독은 불편한 칩거(蟄居)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는 통로(通路)다. 고독의 경험은 처음에는 고통스럽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풍성해진다. 고독은 단순히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동거다.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상처 입은 영혼들이 많아져 가고 있다. 외로움을 거부하지 말고 끌어안아야 한다. 외로움의 끝에서 다가오시는 주님을 깊이 만날 때 외로움의 수혜자가 된다.
〈2장, ‘마음’ 중에서〉
에덴에 찾아온 불행은 물질의 부족 때문이 아니었다. 관계의 깨어짐이 원인이었다. 에덴 이후 관계 맺는 것이 어려워졌다. 공동체의 상실은 뼈아픈 일이다. 홀로 있어 본사람은 공동체의 축복이 무엇인지를 안다. 함께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이웃에 대한 환대는 사랑을 이해할 때 가능하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면 외로움의 병은 치유된다. 고독 속에서 주님과 밀도 높은 깊은 교제를 가질 수 있다면 축복이다. 교제의 밀도가 중요하다. 외로움의 끝에서 주님과 깊은 사귐을 가진 사람은 내적 풍성함을 누리게 된다. 홀로 있을 때나 함께 있을 때나 큰 차이가 없어진다. 존재의 부요함 때문이다.
외로움에 시달려 상대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아직 함께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외로움은 상처다. 뒤틀린 관계의 아픔은 삶에 생채기를 만들어 낸다. 외로움은 자기를 사랑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타인을 사랑하지 못하는 병이다.
〈3장, ‘성숙’ 중에서〉
분주한 활동에 지친 영혼들이 많다. 경작하지 않은 내면은 잡초 밭과 같다. 돌보지 않으면 갈수록 황폐해진다. 심지 않은 데 나는 것은 잡초다. 농부들은 저절로 열매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름다운 정원은 정원사의 눈물과 땀에 의해 가꾸어진다. 영혼의 정원은 일평생 가꾸어야 할 작업장이다. 경작은 쉴 수 없다.
아름다운 결실을 생각하는 자만 경작하고 씨를 뿌린다. 영적 경작을 외면하면 궁핍해진다. 영성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관련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깊이 성숙시켜 나가는 것이 영성이다. 영성은 상품처럼 구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활짝 열린 관계 형성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4장, ‘묵상’ 중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고 있지만 마음이 조급하다. 눈에 보이는 도표를 중시한다. 침묵은 기대한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비생산적인 일로 치부한다. 잠잠히 있는 것을 무능으로 여긴다. 사람들은 무시당한다는 느낌 때문에 가만히 있지 못한다.
딱딱한 껍질을 깨고 영혼의 민낯을 서서히 드러내는 과정을 통과하고 어둠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영혼의 무질서가 조금씩 정리되고 깊고 무거운 침묵의 방을 통과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과 경이로운 접촉이 이루어진다. 진리를 듣는다는 것은 부산한 인간의 노력을 멈춘다는 뜻이다. 나의 어떤 계획과 방어책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내가 나를 통제하려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거짓된 자신의 삶이 깨어지는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 소음이 사라지고 침묵의 끝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은 명료하고 청아하다. 단 한 구절이라도 좋다. 위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이면 충분하다.
〈5장, ‘안식’ 중에서〉
묵상, 고독, 침묵, 이런 훈련들은 단순한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영성을 유지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해야 한다. 복잡하고 분주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내면은 잡다한 죄들이 번식하는 서식지다. 분주한 삶은 단순히 생활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다.
사탄은 속인다. 사소한 것에 집착하게 한다. 그럴듯해 보이는 것들로 마음을 현혹하고 혼돈으로 몰아넣는다. 몰아붙이는 압력에 저항해야 한다. 과다한 스케줄에 수많은 모임은 영웅적 삶이 아니라 벌거벗은 영혼의 초라한 일상이다. 내적인 허기짐을 해결하지 않으면 계속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돌아야 한다. 견고한 내적 세계를 구축하지 않으면 결핍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바쁜 삶은 심각한 결함의 상태다. 죄성은 모든 것을 얻고자 하는 내면적 욕구에 시달리도록 이끈다. 바쁘다는 것은 불안하다는 뜻이다. 심플, 또 심플해야 한다. 다중 초점 렌즈를 싱글 렌즈로 바꾸어야 한다. 단순한 삶을 방해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잘 분변(分辨)해 내야 한다.
〈6장, ‘자유’ 중에서〉
하나님은 상처를 주지 않으신다. 그분의 사랑 안에서 누리는 평안은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치유적 힘이다.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시는 하나님의 시선 안에서 더 이상 상처는 없다. 더이상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에 휘둘릴 이유가 없다. 내가 나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힘, 다른 사람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나다운 삶이 시작된다. 비로소 쉼 없던 삶에 평화가 찾아온다.
광야의 길은 홀로가 아니다. 뜨겁게 다가오시는 하나님과 뜨겁고도 내밀한 만남의 순간을 맞는다. 내몰림의 끝에서 만난 하나님은 새로운 변신을 하게 하신다. 자아 집착에서 벗어나 온전히 그리스도 중심의 삶, 새로운 탄생이다.
사람의 평판에 매이지 않는 자유, 집착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연약함을 기꺼이 내어놓을 수 있는 자유, 하나님 한 분께만 붙들려 살아갈 때 누리는 자유, 어떤 성취가 아닌 하나님을 만날 때 찾아오는 포만감 등 광야를 통해 얻는 축복은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