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잊으면 안 될 변치 않는 진리가 있어요. “너는 내가 보이지 않아도 나는 네가 보여. 어둠의 골목 끝에 있어 아빠가 보이지 않아도 아가, 아빠는 네가 보여.” 막막한 연기 속에 갇혀 있을 때, 그 어둠의 골목을 지나고 있을 때, 믿어 보세요. 내가 하나님을 보지 못할 때에도, 하나님은 당신을 보고 계세요. _〈피투성이라도 살아있으라〉 중에서
우리 예수님, 그 언덕 끝에 당신의 얼굴이 보였기에 이길 수 있으셨던 거예요. “나 너를 위해 도망가지 않았다. 너와 함께해 줄 수 있을 것을 그리며 나 이 겟세마네를 이길 수 있었노라.” 그러니 잠잠히 바라보세요. 당신의 그 눈물의 겟세마네 언덕을 먼저 올라가 기다리고 계셨던 그 아버지를…. 그 언덕 끝에서 우리 주님, 열심히 포기하지 않고 그 언덕을 지켜낸 우리를 마주하실 때 웃으며 이렇게 말씀해 주시지 않을까요? “잘 있었느냐. 충분했다. 그 고민과 싸움마저 아름다웠다. 나도 너의 언덕에 함께 있었다. 네가 없는 천국보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만큼 너를 사랑했다.” _〈겟세마네에서 바라본 얼굴〉 중에서
분명 우리에게도 예수님과 만나 출발했던 그 무화나 나무 아래가 있어요. 가장 연약하고 가장 처절해서 눈물로 버티며 기다렸던 내 나무 아래로 예수님께서 찾아와 말씀해 주셨지요. “내가 다 봤다. 네가 홀로 울던 방, 네가 듣던 찬양, 네가 쓰던 기도문. 너의 버텨온 눈물들에 이미 내가 함께 있었다. 너의 무화과나무 아래에 한순간도 빠짐없이 내가 함께 있었다.” _〈한계가 왔구나〉 중에서
기다리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벌벌 떨며 두려워했던 그 파도가 누구 발아래에 있는지 제대로 보세요. 보이세요? 당신이 두려워 떨던 풍랑이 누구 발아래에 있는지. 예수님이 당신의 파도를 그 발아래에 두고 밟아 걸어오십니다. 신기하죠? 내 상처의 파도와 눈물의 풍랑은 내가 피해야만 하는 어려운 난관이라고 생각했는데 잘 보세요. 예수님에게 그 파도와 풍랑은 ‘내게 달려오시는 길’이 됩니다. _〈폭풍 수업〉 중에서
우리가 살면서 가장 많이 드는 질문이 뭐예요? 하나님은 왜 내 미래와 앞을 다 아시면서 내 실수와 실패를 막아 주지 않으시는가? 왜 이 고난을 그냥 내버려 두시는가? 대답은 한 가지입니다. 당신을 위한 하나님의 큰 그림에는 당신의 완벽함과 성공도 필요하지만 또한 넘어짐과 실패도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금빛 물감이 큰 그림 안에서 진짜 금빛으로 빛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검은색 물감입니다. 화가가 그 금빛 물감을 정말 빛 되게 그려내기 위해서는 그 큰 그림 안에 검은색도 칠해야 합니다. 당신에게 반드시 어둠과 실패도 허락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을 깨뜨려야 하고 빛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_〈빛이 빛 되기 위해〉 중에서
의심하고 있는 당신이라면, 흔들리고 있는 당신이라면, 그 작은 숨이라도 괜찮아요. 살려 달라고, 이 의심 속에서도 나는 주님이 필요하다고 그 눈물 그대로 기도하는 거예요. 그러면 자신의 흉터를 기꺼이 들고 가셨던 당신의 예수님이 말씀하실 겁니다. “단 한 날도, 단 하나의 한숨도 나 너의 소리를 놓친 적 없다. 이제 그 늪에서 나오거라.” _〈흉터〉 중에서